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 22.4%에 달하는 초고령 지역, 인구 10만 명당 사망률 전국 1위, 인구소멸지수 전국 최하위…. ‘나이든 전남’을 웅변하는 언어들이다.
청년은 떠나고 노인만 남아 있는 전남의 시골은 활력이 없고 황량하다. 군데군데 빈집은 늘어 가고 텅 빈 동네엔 흙먼지가 날린다. 시골의 사막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광주에서 차로 40여분 거리에 위치한 담양군 월산면 월평리도 같은 처지였다. 전체 35가구 중 28가구가 폐가로 방치돼 있었다. 마을 청년회장은 71세 할아버지다. 마을엔 잿빛 절망이 감돌았다.
이 마을에 언제부터인가 웃음이 퍼지고 있다. 그림자가 걷히고 삶의 온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서울 청년들의 창의적 도전이 마을을 변화시켰다. 서울 홍제동에서 리노베이션 기반의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노리터’가 시작한 농촌마을 재생 프로젝트인 ‘담양 노리터’ 프로젝트 덕분이다.
노리터의 ‘담양노리터’ 프로젝트
◇산뜻한 게스트하우스로 변신한 시골 폐가
담양군 월산면 월평리 입구에 들어서면 깔끔하게 정돈된 길옆으로 알록달록한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회색빛이었을 담벼락은 해바라기, 동백꽃들로 수놓아져 있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니 마당이 딸린 단아한 집들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집 안에선 담양의 특산물인 대나무 소품들이 특유의 향기를 품어낸다. 낮게 흐르는 옛 가요는 잊힌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월평리는 사실 휑한 마을이다. 한집 걸러 한집이 폐가다. 그러나 단아하게 개조된 집들 덕분에 마을 전체가 꽉 차 있다는 느낌을 준다. ‘담양 노리터’ 프로젝트가 일군 변화다.
새롭게 단장한 월평리 빈집들은 ‘休(휴), 愛(애), 喜(희)’라는 이름을 가진 게스트하우스로 활용되고 있다.
◇주민들과 호흡하며 창의적 시도…변화 일궈
전국을 대상으로 리노베이션 기반의 도시재생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노리터’는 담양의 월평리에서 비어가는 농촌의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특히 빈집에 주목했다. 흉물처럼 변한 빈집은 사골 마을의 이미지를 실추시켜 도시민들이 농촌을 더욱 외면하게 만든다.
“이곳을 단장하면 시골 어르신들에게는 쉼터를 제공하고 농촌을 찾는 젊은이들에게는 무언가를 창작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게 좋을 텐데…”
‘노리터’는 빈집에 생명을 불어 넣기로 했다. 한국뉴욕주립대 RC초빙 교수인 이주열 이사는 비슷한 프로젝트를 추진한 경험이 있었다. 담양이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눈)에서 젊은이들이 찾고 싶은 장소로 꼽히고 있다는 점, 광주와 근접해 있어 접근성이 좋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소로 판단했다. 은퇴 이후 이곳에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노리터’는 마을 주민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청년회에 가입을 하고 주말이면 마을가꾸기 운동도 하고 있다. 그렇게 ‘담양 노리터’를 추진한 지 2년. ‘노리터’ 직원들은 마을 어르신들과 격의 없이 지낸다. 어르신들의 집에 통신 케이블과 와이파이를 설치했다. 어르신들은 도회지에 사는 손자와 화상통화를 할 정도다. 또한 보고 싶던 손자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찾아오는 횟수가 늘었다. 마을에 활력이 돌면서 7가구가 월평리에 새로 들어오기도 했다.
◇빈집을 한국형 ‘실리콘 발리’로 조성 예정
‘노리터’는 농촌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있다. 다만 귀농을 결심했다면 농촌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 지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이사는 “많은 사람들이 ‘귀농’하면 ‘농사를 지어야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게스트하우스 형태로 사람들과 교류도 하면서 일정부분 수익도 얻을 수 있다”며 “농촌에서의 지속가능한 삶의 형태를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리터’는 월평리를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려 한다. 이 이사는 “이곳을 인도네시아의 ‘실리콘 발리’처럼 관광지에 청년 창업자들이 거주하며 휴식과 일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쉼터이자 놀이터로 만들고 싶다”며 “동네 어르신들에게도 일거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공유 밥상프로그램, 지역 농산물 등을 이용한 로컬 굿즈, 빈집을 개조한 카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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