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남긴 ‘유지’다. 이병철 회장은 1987년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숨졌다. 이건희 회장은 2014년 심근경색으로 입원할 때까지 아버지의 뜻을 받들었다. 이재용 부회장도 할아버지 유지를 받들고 있다.
이병철 회장의 무노조 발언이 나올 때만 해도 군사독재 시절이었다. 노동 3권은 법전에만 있었다. 1987년 6월항쟁을 거치며 사회는 민주화되었고 창업주의 눈에도 흙이 들어갔다. 그런데도 무노조 경영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두 가지 정도 이유를 헤아려볼 수 있다. 첫째, 오너 콤플렉스다. 알려진 대로 이건희 회장은 셋째 아들이다. 재벌가의 불문율인 장자상속이 깨졌다. 장자가 아닌 그가 아버지의 무노조 유지도 받들지 못한다는 비난을 듣기 싫었을 것이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던 그도 시대착오적인 유지만은 바꾸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황태자’는 아직까지 제대로 경영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이재용’ 이름 뒤에는 늘 ‘불법 승계’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그룹 내 경쟁자도 있다. 그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경쟁 구도는 한때 삼성 이너서클에 있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2010)에도 잘 나와 있다. 그런 이 부회장이 아버지가 대를 이어 지켜온 무노조 경영을 깰 수 있을까? 이 부회장은 무노조야말로 자신의 ‘실적’이라고 여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무노조 경영을 뒷받침해준 사회 시스템이다. 한국은 노동청부터 검찰, 법원까지 인맥과 로비로 엮인 삼성공화국이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은 삼성 문턱 앞에서는 멈춘다. 문턱을 넘으려면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빈말이 아니다. 1990년 삼성조선 민주노조 이근태 부위원장이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그는 “삼성조선의 탄압에 이근태는 목숨을 던집니다. 저 개인의 희생이 값진 희생이 되길 삼성조선 동지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가장 최근인 2014년에는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염호석 양산분회장도 목숨을 내놓았다. 염씨는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이들 외에도 삼성에서 노조를 만들려다 사찰당하고, 납치당하고, 해고당해 정신병원 입원까지 한 이들이 숱했다. 그중 한 명이었던 박종태씨는 <삼성 안에 숨겨진 내밀하고 기묘한 일들-환상>(2013)이라는 구술집에서 적나라하게 회사의 탄압을 폭로했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재용 부회장이 최근 16일간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고 한다. 언론은 ‘열공 출장’이니 ‘스터디 출장’이라고 포장했다. 만일 그가 시대착오적인 할아버지의 유지를 깰 수 있다면, 그때야말로 ‘이재용표 신경영’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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